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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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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역지사지’와 ‘역지즉개연’- 이상목(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2-01-1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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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일종의 명령문이다. 간극이 큰 견해차에 대해 서로 이해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맹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 유래라 한다. 그러나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하더라도 서로의 생각이나 행동이 같을 수밖에 없다’는 평서문이며, 견해차 없는 의사합치를 뜻한다. 그래서 엄밀히 역지사지와는 다른 뜻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뜻인데도 어떻게 두 문구가 상관관계를 갖게 됐을까.

    맹자 이루편에 보면 중국의 전설적 성인 하우(夏禹)·후직(后稷)과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 3인의 인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우와 후직, 안회는 비슷한 철학을 가졌다.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물 관리를 잘못해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다. 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일을 잘못해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안회는 어지러운 세상의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하우, 후직, 안회는 서로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거나 처신했을 것이다.’ 이른바, 우직안자역지즉개연(禹稷顔子易地則皆然)이다.

    역지즉개연은 당사자가 굳이 소통하지 않더라도 동일본성으로 똑같은 처신을 한다는 얘기인 반면, 역지사지는 자리를 바꿔보는 파격적인 소통에도 견해차를 좁히기가 쉽잖다는 것을 암시한다. 역지사지는 중국의 성어사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주로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고 있어, 조어(造語)일 개연성이 크다.

    지난주 김두관 지사와 허남식 부산시장이 ‘일일 교환근무’를 했다. 지난 1995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국내 지자체에서는 처음 시도해보는 일대 사건이었다. 경남도가 제안했고 부산시가 수용했다. 극명하게 입장을 달리하는 쟁점 현안을 풀어보자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작동했다. 그래서 언론은 ‘정치성 이벤트’를 경계하면서도 집중 조명을 했다.

    부산과 경남을 관류하는 쟁점 현안은 크게 두 가지다. 깨끗한 산청 경호강·덕천강 물이 합쳐져 만들어진 남강댐 물을 부산 식수로 가져가겠다는 것에 대한 공방과 동남권을 수도권에 버금가는 경제권으로 육성하기 위해 신국제공항을 유치하되 그 입지를 어디로 정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러나 허 시장은 이날 남강댐 물과 신공항 문제에 대해 기대와는 달리 종래와 같은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역지사지’에 대한 의지가 애시당초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실망감을 줬다. 특히 신공항 입지에 대해 허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국제공항은 대(大)도시와 모(母)도시에 위치해 있다. 주변 중소 도시민들은 공항 접근성에 있어서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종래의 신념을 재확인, 경남인의 심기를 자극했다. 김 지사가 부산시청에서 “신공항은 동남권뿐만 아니라 남부권 주민들의 편의를 감안해야 한다. 입지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맡기고 유치를 위해 주민도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가치중립적 입장을 보인 것과는 대비됐다.

    허 시장이 교환근무의 취지를 10%만 감안, ‘동남권의 활력을 위해 신공항이 필요하니 반드시 유치돼야 하고, 입지는 영남권 광역시·도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정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멘트를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역지사지는 소통의 한 방식이다. 소통은 양보와 배려, 경청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날 허 시장이 보여준 태도는 자기 소신을 일방전달하는 방식이지 역지사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오죽했으면 ‘억지사지’라고 폄훼했을까.

    역지사지를 뛰어넘어 역지즉개연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를 180도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상목(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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