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7권의 도서를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그림책·동화 그리고 청소년 분야의 책나눔위원이 추천하는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매달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문학
●김현균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심장, 시인의 언어가 지닌 아름다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는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빵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고, 최고의 시인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건네는 존재’라는 네루다의 메시지가 실현되는 장소가 바로 라틴아메리카다. “길가의 돌멩이만큼 시인들이 나오는 곳”이라는 예찬을 듣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스며든 열정과 낭만의 정서를 풍요롭게 담아낸 책이다. 네루다는 “길을 가다 아무 돌멩이나 뒤집어보라. 시인 다섯 명이 기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총’과 ‘펜’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을 울린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낯설기 그지없던 라틴아메리카가 책장을 덮고 나면 친구처럼 이웃처럼, 다정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여울 위원(<빈센트 나의 빈센트> 저자)
저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입니다/인문예술
●석정연 지음
●산지니 펴냄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다. 그만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것은 당사자들의 하루하루 삶이 고단하고 싸울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 사서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노동인권의 실태를 고발한다. 불안한 고용 현실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도서관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않는, 그래서 도서관 노동 현장의 부당함이 더 뼈아픈 현실을 알린다. 누군가 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없이 조용히 묻힐 이야기에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만 힘든 사회. 이를 세상에 알려 객관적 평가를 받겠다는 저자의 고군분투는 우리 모두 동료 시민으로서 귀 기울여야 할 현실이다. 특별히 이 책은 지방의 한 문화재단에서 지원해 첫 책을 펴낼 수 있는 ‘뉴북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출판사도 지방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김경집 위원(인문학자)
예술적 상상력/사회과학
●오종우 지음
●어크로스 펴냄
학문을 포함해 비교적 명확했던 영역 간 경계가 사라지는 요즘이다. 행위적으로 간혹 경계가 없어지는 사건이 목도되지만 그래도 인간, 그 존재만큼은 비교 가능한 동물 등과 확실한 경계가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 아니 이미 곳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존재감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만이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조만간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이슈와 논쟁을 낳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책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궁극적으로 기계와 구별되는 것은 예술이 보여주는 인간의 사유와 그에 내재된 상상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이 노동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활동을 대체함으로써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활동을 대체한다고 해서 결코 인간일 수는 없는 차이, 바로 예술적 상상력을 책은 제시한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예술, 곧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접근이 미래일 수 있다는 통찰이 설득력 있다.
이준호 위원(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관계의 과학/자연과학
●김범준 지음
●동아시아 펴냄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어떤 패션이 유행할지, 그리고 언제 지진이나 산불이 날지 우리 모두는 궁금해한다. 놀랍게도 큰 전체의 그림 안에서 모든 변화를 총괄하는 과학적 법칙들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책이 소설책이냐 과학책이냐에 따라 얼마나 오래 베스트셀러 목록에 남을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고, 옷차림이나 영화·음악의 유행을 그래프로 그려보고 전염병의 유형(패턴)과 비교해보면 그 유행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한 입소문을 통한 유행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김범준의 <관계의 과학>에는 이 외에도 궁금증을 일으키는 수많은 질문이 담겨 있다. 국회의원들은 누가누가 친할까, 영화 관객 수와 우리나라 소득분포 사이에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술 마시다 사라진 만취자를 찾아내는 수학 공식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경우에 새로운 시각에서 ‘아하’의 순간들을 제공한다.
장동선 위원(뇌과학 박사)
나는 바람이다/그림책,동화
●김남중 지음
●비룡소 펴냄
‘하멜 표류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책 제목일 것이다. 1600년대 중반 조선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에서 보낸 10여 년 삶을 그린 보고서.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장보고·이순신 같은 걸출한 바다 영웅이 있었던 우리가 왜 더 이상 바다로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작가는 하멜 표류기에서 이야기 씨앗을 건졌다. 하멜의 귀향에 조선 소년 하나가 따라붙는다는 설정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소년 ‘해풍’은 일본, 인도네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태평양을 거쳐 지구를 한 바퀴 이상 도는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 전 11권, 주요 등장인물만 50명 넘는 이 초대형 해양 이야기는 우리 동화 역사상 하나의 빛나는 성취로 기록될 만하다. 태풍과 무풍 같은 자연환경, 해적과 노예 납치 같은 세계사, 사랑과 그리움, 믿음과 배신 같은 인간관계 문제까지 종횡무진 휘어잡으며 힘차게 나아가는 서사가 비할 데 없이 유장하다.
김서정 위원(동화작가)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봅시다/실용일반
●양승진 지음
●메멘토 펴냄
새해가 되면 많은 직장인이 자기계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만만치 않다. 출퇴근과 기본 업무에 회식, 야근까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게 직장인이다. 그러다 보면 ‘역시 내게 공부란 사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땐 일과 공부를 병행해온 선배 직장인들의 조언을 들어보자.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봅시다>는 외국어, 대학원 진학 등 공부를 꾸준히 한 기자가 자신의 공부법을 풀어놓은 책이다. 저자 자신이 직장인으로 어렵게 시간을 내 공부한 만큼 ‘오늘 1시간’을 확보하는 마음가짐과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물론 ‘25분 공부 후 5분 휴식’ 등 시간 관리법, 경험을 토대로 한 효율적 학습 방법, 외국어 공부법, 효과가 배가되는 학습도구 등을 제안한다. ‘3과 공부’라는 학습 계획이 아니라, ‘집에서 1시간 동안 중국어 교재 3과 본문 반복 청취 및 낭독+단어 암기’라는 구체적 행동 계획이 필요하다는 등의 조언은 바로 적용해볼 만하다.
송현경 위원(내일신문 기자)
원 테이블 식당/청소녀
●유니게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청소년 소설은 곧 성장소설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거기에는 청소년을 삶의 주체라기보다 정해진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근래에 환상, 공상과학, 역사문화 같은 제재가 들어와 다양해지고 있으나, 인물이 ‘가치 있는’ 성장을 해야 청소년 소설이라는 생각은 여전한 듯하다. 이런 관념도 문제지만, 성장을 할 때 그 ‘가치’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그것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답습한다든가, 인물과 독자가 청소년임을 구실로 깊이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 일반의 형태를 취하되, 보기 드물게 성장의 내용을 파고든다. 주인공 ‘나’는 불행을 당한 친구를 전력으로 돕는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결말부에서 사람 사이의 도움은 거꾸로 구속이 될 수 있으며, 성장은 오히려 헤어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최시한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