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맞다? 아니다?…철도 민영화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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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3.12.25. 오전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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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수서동 케이티엑스(KTX) 수서역 공사현장에 지난 9일 오후 철도 레일 위로 건설중인 플랫폼 등이 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 터에는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며 약 52% 공정이 진행된 상태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겨레] [문답으로 짚어본 철도 민영화]

수서KTX 뭐길래 난리인가요?

수서~부산·목포 잇는 ‘알짜 노선’

분리땐 코레일 매출 연 4500억 감소

민영화 맞나요?

정부 “여러겹 방지장치 마련” 강조

노조 “민간자본 참여 길 열려” 맞서

코레일 방만 경영 사실 아닌가요?

부채 17조원 심각한 건 사실

노조 “정부 정책 실패 탓도 커”

코레일 개혁 필요한 건 사실 아닌가요?

노선 쪼개기보다는

사업·경영 등 과감한 개혁 필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지난 9일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파업이 24일로 16일째를 맞았다. 그사이 열차 운행률은 70%대로 떨어졌고, 경찰은 철도노조 지휘부가 은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에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에 민주노총이 28일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정국마저 얼어붙고 있다. <한겨레>는 이 모든 사태의 단초였던 철도 민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문답풀이 형태로 정리했다.

■ 수서발 케이티엑스(KTX)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인가요?

정부는 2016년께부터 운행 예정인 수서발 케이티엑스 운영을 신규 업체에 맡기겠다는 방침입니다. 현재 코레일이 운영하고 있는 케이티엑스는 서울, 용산역에서 부산, 목포역을 운행하는데,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강남구 수서역에서 출발해 동탄새도시 등 경기 동부 지역을 경유해 부산과 목포역을 운행합니다.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평택역부터는 기존 케이티엑스 노선과 같은 레일을 달리게 됩니다.

문제는 현재 코레일의 매출 구조입니다. 코레일은 무궁화, 새마을, 케이티엑스 등 여러 열차를 전국 단위로 운영하고 있는데, 케이티엑스 경부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케이티엑스 흑자분으로 나머지 적자를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구매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강남권역과 분당·성남 등을 지납니다. 이처럼 유독 ‘알짜 노선’을 분리하려는 데에서 의구심이 시작됐습니다. 철도노조는 영업성이 높은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분리하는 것은 결국 ‘알짜 노선’을 민간에 넘기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분리하면, 코레일에 손해가 큰가요?

철도 시장은 지역독점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강남권에 사는 시민들은 서울역 대신 수서역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교통학회는 최근 연구용역 중간보고서에서 앞으로 30년 동안 연간 평균 5만5000여명의 시민이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에 따른 코레일의 매출 감소는 연 4500억~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물론 정부는 이에 대해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코레일이 신규 업체에 열차를 빌려줘 임대료를 받게 하고, 차량 정비도 코레일이 대행합니다. 국토교통부는 그 대가로 코레일이 받는 신규 수입이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더구나 신규 업체 설립에 따라 코레일 인력이 전환배치돼 인건비가 줄고, 경쟁체제 도입에 따라 경영효율화를 하면 코레일에도 큰 손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비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실제 코레일 쪽 자료를 보면, 신규 업체에서 받는 임대료·렌트비는 감가상각,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순수익 119억원만 남을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 공적자본에 지분을 넘긴다던데, 그게 민영화인가요?

정부는 수서발 케이티엑스 신규 업체의 지분을 코레일과 공적자본에 나눈다는 방침입니다. 정부안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 등 공적자본이 재무적 투자자로 59% 지분을 소유하고, 코레일은 41% 지분을 확보하게 됩니다. 민간자본은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논리입니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의 성격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립니다.

국민연금기금은 전 국민의 노후자금이라는 면에서 사용 목적은 공적자금임이 분명합니다만, 그 운용 방식은 민간투자기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민연금법 102조는 ‘국민연금기금은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관리운영하고 시장수익률이 넘는 수익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기금은 7% 정도 목표수익률을 두고 운용됩니다. 결국 수서발 케이티엑스는 국민연금기금의 투자수익을 보장해야만 합니다. 이로써 국가 공공 교통망인 철도에 이윤의 논리가 적용되는 셈입니다. 이는 ‘넓은 의미의 민영화’라는 것이 철도노조의 주장입니다.

■ 정부가 절대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던데요?

정부도 철도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몇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첫째는 신규업체 정관에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는 것입니다. 또 지분을 매각할 땐 이사회 특별결의(재적이사 3분의 2 출석, 3분의 2 찬성)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공적자본이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면, 정부는 신규 업체의 철도영업 면허를 박탈하겠다고도 합니다. 정부는 이 정도 안전장치라면 지분 이전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도노조의 판단은 이와 조금 다릅니다. 최근의 민영화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민연금기금이 직접 지분을 사들이지 않고, 펀드를 통해 지분을 사들일 경우 민간자본이 그 펀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명칭은 ‘국민연금기금 펀드’이지만 실제론 민간자본이 지분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법무법인 세종은 지분 매각을 위한 이사회 정족수 제한은 상법에 저촉될 소지가 높고, 면허권 제한 조처는 민간 지분 매각에 대해 ‘인허가권’을 빌미로 하는 행정처분이어서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 코레일의 방만경영이 심각한 건 사실 아닌가요?

코레일의 부채가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코레일은 연평균 57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코레일의 부채는 17조원을 웃돌고, 지난 6월 말 기준 부채 비율은 435%에 이릅니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에 이르고 코레일 인건비는 평균 5.5%씩 인상되고 있다. 성과급도 한 해 1000억원 이상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철도노조는 부채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코레일의 부채 가운데 상당수는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인데, 무조건 방만경영 탓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억울하다는 겁니다. 실제 코레일은 2009년 민자사업으로 추진된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면서 1조2000억원의 빚을 짊어졌고,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무산되면서 4조~6조원의 손해를 봤습니다. 코레일 부채 문제는 정부와 코레일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입니다. 코레일은 2005년 설립 뒤 8년간 정원의 10%에 이르는 2700여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등 자구노력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코레일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5700만원 수준입니다. 이에 철도노조에서는 코레일의 방만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가 연봉을 부풀리고 있다는 반발도 나옵니다.

■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는 건 사실 아닌가요?

일반적으로 경쟁은 가격 하락과 서비스 수준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으로 철도운임은 낮아지고 서비스는 좋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쟁체제 도입으로 철도사업 경영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고, 경영 효율화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한국 철도시장이 경쟁체제를 수용할 정도로 크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됩니다. 한국의 철도 영업거리는 3500㎞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는 앞서 경쟁체제를 추진한 독일·일본의 10% 수준입니다. 노동력 투입이 많은 철도산업의 특성 탓에 일정 운영거리 이상이 되어야 흑자운영이 가능한데, 작은 시장을 또다시 쪼개는 것은 철도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또 수서발 케이티엑스와 기존 케이티엑스는 전체 레일의 80% 정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선로 분배와 유기적 신호체계(관제)의 중요성이 큰 철도산업에 별개 노선이 아닌 동일 노선 경쟁체제는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 코레일의 개혁도 필요한 게 사실 아닌가요?

코레일에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코레일은 각종 사업 분야의 회계조차 분리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주먹구구식 운용을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철도운용을 통한 관광사업 활성화와, 역세권 개발 등 수익성 사업도 과감하게 진행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철도 민영화 논란과 상관없이 진행해나갈 수 있는 개혁 방안입니다. 코레일 방만경영을 잡기 위해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분리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한국철도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개혁 방안도 제안되고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과 정부 눈치만 보는 이사회에 코레일 경영을 맡길 게 아니라 ‘참여형 이사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입니다. 철도 이용자와 전문가, 철도 노동자가 함께 경영 판단에 참여해 각자 다른 이해관계 아래 상호 견제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공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해보자는 것이지요.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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