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규제 완화의 덫
정부, 사고 하루 전에도 선박 규제 완화 조치… 돈만 따졌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 카페리는 선령 제한이 없다. 2006년 한·중 해운회담 이후 한국이 선령 제한 30년을 요구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8년 이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영세한 여객사업자의 부담 경감을, 중국은 승객 안전을 내세웠다. 최근 상황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본 중국이 한국의 선박 안전관리 체계를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15일 “중국 측 관계자가 ‘한국은 구난구호 능력도 없으면서 왜 30년을 고집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중국은 이참에 선령 제한을 25년 이하로 낮추는 방안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를 맹신하던 한국 정부의 안전불감증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침몰한 세월호가 일본에서 운항되던 시절(사진 위)과 침몰 전 국내에서 운항되던 모습(아래)을 비교하면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선박을 수입해 배 중앙과 뒷부분 객실을 증축했음을 알 수 있다. | 연합뉴스
▲ 선박연령 30년으로 늘리자 노후 여객선 수입 3배 폭증
“사고 우려” 당국 보고서 묵살
▲ 안전검사 업무 담당 ‘선박검사원’ 선원에서 제외
‘선박 이상’ 보고 의무·선사인증 때 내부심사 없애
선장 쉴 땐 대리항해 가능, 구조·구난은 외부 맡겨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를 발표했다. 민변이 꼽은 세월호 침몰의 근본 원인 첫번째는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한 안전장치의 해체’였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완화된 선박 관련 규제는 20건이 넘는다. 신호탄은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령’ 개정이었다. 이 조치로 배가 건조된 지 25년까지만 사용하던 것을 30년까지 쓸 수 있게 됐다. 해운조합은 2006년부터 선령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지만 참여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달라졌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연안여객선 해난사고 대부분은 선원의 과실 탓”이라며 “선령 규제 완화로 안전과 관련한 위험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선령 제한을 25년으로 묶다보니 사용 가능한 선박도 20년이 넘어가면 가격이 떨어져 선사들의 손해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무작업을 담당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선령 제한을 풀면 노후 선박을 구입해 운항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늘어나자 선사는 18~19년 된 중고선박을 들여와 국내 연안에 띄우기 시작했다. 한국이 일본 노후선박의 주 구매처로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2008년 연안여객선 166척 중 선령 21년 이상은 13척이었다. 하지만 2012년 말에는 172척 중 39척으로 3배나 늘어났다.
노후선박이 늘면서 사고가 급증했다. 현장에서도 문제점이 보고됐다. 201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연안여객운송산업 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를 국토해양부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최근 연안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 선박은 선령이 15년 이상 된 것”이라며 “노후선박은 각종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20년 이상 된 선박을 새 선박으로 바꾸기 위해 2011년 기준 4383억원, 2022년에는 1조3028억원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비용까지 제시했다.
![[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규제완화 광풍 속에 세월호가 침몰했다](https://img.khan.co.kr/news/2014/05/15/l_2014051601002195300188254.jpg)
당시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집행하면서도 새 선박으로 교체할 예산 4000억원은 책정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가 택한 것은 규제 완화였다. 규제를 풀어 선사 이익을 보충해주겠다는 발상이었다. 승객 안전은 뒷전이었다.
2009년에는 정부가 여객선 엔진검사에 대한 규정을 완화했다. 이때까지는 엔진가동 7000시간마다 검사를 하도록 돼 있었지만 이를 9000시간으로 연장했다. 카페리의 과적 및 적재 기준도 느슨하게 풀었다.
기존에는 승인받은 적재도면과 다르게 차량이나 화물을 적재할 경우 새로 승인을 받아야 했다. 2009년부터는 기본 차종에 대한 승인만 받으면 유사 차종도 실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항해 시간이 1시간 미만이더라도 기존에는 쐐기로 고정해 단단하게 묶어야 했지만 이때부터는 갑판에 고정된 사각밧줄로 묶어도 문제가 없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에 더 매달렸다. 선장이 선박에 이상이 있으면 서면으로 이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없앴다. 선박 최초 인증심사 때 선사가 해야 하는 내부심사도 없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4월15일 정부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 ‘선원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 시행령은 선박검사원, 선박수리를 위해 승선하는 기술자 등을 선원에서 제외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선원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쓸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선박검사원은 선박의 안전을 검사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선원이 아니어서 정규직이 아닌 파견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시행령은 또 선장의 휴식 시간에는 1등 항해사, 운항장 등이 선장의 조종 지휘를 대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선장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관련 시행령 내용은 ‘2006 해사노동협약’이 국내에서 발효되는 내년 1월9일부터 적용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이미 항해사에게 조종을 맡기고 있었다.
구난이나 구조는 외부에 맡겼다. 2011년 해양경찰 주도로 수난구호법을 만들었지만 민간구조대의 발목을 묶는 법이 됐다. 해경이 요청하지 않으면 해군과 민간은 구조에 나설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나면 여객선사가 책임져야 했다. 해경은 청해진해운 측에 ‘언딘 인더스트리’라는 구난회사와 계약할 것을 요구했다.
언딘은 해경 산하 법정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 회원사였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이 협회의 부총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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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규제 완화 때마다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배를 탄 경험이 없는 해피아(해양수산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이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장을 독점했고 기관끼리도 인맥과 학맥, 이권이 얽히고설키면서 눈대중 검사와 감독에 그쳤다.
박상익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해운정책본부장은 “기관장 자격도 완화해 배를 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앉으면서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감시할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