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같은 반 가운데 이런 친구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생활태도는 그다지 모범적이진 않다. 가끔 선생님들 몰래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신다. 야한 책도 읽으며 낄낄대지만 막상 공부를 할 때는 무섭게 한다. 성적은 늘 전교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머리가 아주 좋다. 스포츠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겼다.

주관도 뚜렷해서 남에게 이끌리기보다 남을 이끌기 좋아한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성격은 좀 독특해서 결코 자기 주관을 굽히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잘 대해주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눈치를 보이면 용서없이 보복을 가하거나 왕따를 시킨다. 또한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들어주지 않으면 반대편에 대해 욕을 퍼붓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반장 선거 결과를 예상하며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 친구에 대해 평가가 갈린다. 어느 선생님은 이 아이가 능력이 좋고 매력도 있지만 포용력이 없기에 결국 반장은 되지 못하고 그저 인기있는 학생이나 임원 정도로 그칠 것이라고 한다. 한편 다른 선생님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반대편 경쟁 후보의 능력이나 매력이 너무도 떨어지기에 결국 이 친구가 반장이 되어 반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한다.

당신은 과연 어느 쪽 의견이 더 맞을 거라 생각하는가?

눈치가 빠른 사람은 벌써부터 이 이야기가 바로 IT업계에서 애플을 비유하는 말이란 걸 알 것이다. 그리고 반장이란 것은 시장을 지배하는 최종 승리자를 말한다.

지금 일단 애플은 확실한 리더다.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의 새로운 개념을 열었고 나날이 관련 기술과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안드로이드와 모바일7이 따라가고 있으니 아직은 아이폰의 우세가 이어지고 있다. 태블릿으로 가서 아이패드에 이르면 아직은 경쟁자다운 경쟁자도 없다. 때문에 애플이 이 기세를 몰아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시장 지배자가 될 거란 예상도 많다.



애플은 분명 초기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연 애플2부터 매킨토시와 아이팟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리더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과연 최종승리자가 되었는가? 시장 지배적 위치에 선 적이 있었을까?
우선 다음 뉴스를 보자.(출처: 일렉트로니스타)

컨수머 리포츠가 오늘 자로 공개한 스마트폰들의 랭킹에서 iPhone 4가 안테나 문제로 빠져 모든 네트웍들에서 안드로이드 폰들이 휩쓰는 결과가 나타났다.
AT&T에서는 삼성 캡티베이트가 가장 높게 추천된 폰으로 올랐고, 그 뒤를 이어 iPhone 3GS가 2위를 차지했다. 버라이즌 네트웍에서는 드로이드 X가, T-Mobile 네트웍에서는 삼성 바이브런트가 그리고 스프린트에서는 HTC EVO 4G가 각각 수위를 기록했다.
iPhone 4는 76점을 받아 삼성 캡티베이트, 바이브런트와 같은 점수였고, 드로이드 X와 EVO 4G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컨수머 리포츠는 iPhone 4의 실제 디자인 변경이 없이는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폰4지만 여전한 안테나 결함에 대해 컨슈머리포트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랭킹 자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애플 팬보이들은 이에 대해 컨슈머리포트를 비난하며 아이폰4의 결함은 없거나 다른 휴대폰에도 있다고한다. 심지어 바로 이 일때문에 컨슈머 리포트의 구독을 취소하거나 그 권위를 끌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서 컨슈머 리포트의 권위와 신뢰는 애플을 능가한다. 단지 애플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애플도 감히 컨슈머 리포트에 항의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렇게 데스스팟 문제를 제기할때 아무런 대응을 안하던 애플이 컨슈머리포트에서 다루기 시작하자 범퍼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도요타도 그랬고 수많은 기업들이 컨슈머리포트의 냉정한 평가 한 번에 치명적인 손실과 회복하기 힘든 신뢰도 하락을 겪어야 했다. 어떤 외압이나 편향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아직까지는 이 잡지를 지탱하고 있으며 애플은 결국 다음 버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형식이든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애플은 분명 훌륭한 기술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으며 실제로 되어왔다. 그러나 아이팟을 제외하고는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지배자가 되지 못했다. 이것은 애플의 근본적인 설계와 생산구조에 문제가 있다. 제품의 매력과는 별도로 애플이 취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기업과의 전략제휴에 지배자가 보여야 할 요소가 심각하게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포용과 호환성이란 측면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뉴스를 보자. (출처: 인가젯)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네덜란드의 De Telegraaf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대한 발언을 했다.

그는 아이폰이 아닌,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윈도가 PC 시장을 지배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아이폰을 두고 "약점이 거의 없고, 큰 문제도 없다. 품질의 측면에서, 아이폰이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안드로이드는 더 많은 기능들이 있다"며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제공한다고 덧붙엿습니다. 결국에, 그는 안드로이드가 품질, 일관성, 사용자 만족 측면에서 iOS에 필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종료하면서 노키아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그는 노키아를 두고 "이전 세대의 브랜드" 라며 "핀란드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기술에 있어서 대단한 천재이며, 애플2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공동 창립자다. 스티브 잡스가 천재 마케터였다면 워즈니악은 천재 엔지니어였다. 그런 워즈니악이 이렇게 말한 것은 냉정하지만 그 다운 말이다.

워즈니악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시대 초기의 선량한 해커로서 시작했다. 기술의 개방, 인류에의 공헌, 서로에게 유익한 정보교환 등을 좋은 가치로 여겼다. 돈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어쩌면 워즈니악의 정신은 애플보다 지금의 우분투 리눅스의 정신에 더 가까울 지 모른다. 안드로이드는 비록 우분투 리눅스 보다는 영리적인 색깔이 짙지만 그래도 애플보다는 훨씬 덜 상업적이며, 더 잘 개방되어 있다. 똑같은 리눅스 커널을 쓰기도 했다.

따라서 워즈니악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리더는 애플이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는 안드로이드가 지배자가 되는건 당연하다. 워즈니악은 애플에 있을 때도 잡스와 의견이 달랐는데 항상 직원의 복지와 처우를 우선하고, 제품의 확장성을 중시하는 등 자유로운 해커였다. 아마도 이런 워즈니악이 잡스에게 좀 더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지금의 애플은 보다 지배자가 될 확률이 높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애플의 평사원일 뿐이다.

애플, 리더는 되어도 지배자는 될 수 없는가?

솔직히 말해 굳이 애플이 지배자가 되어야 할 필요 자체가 있는가. 애플은 리더로서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으며, 스스로도 지배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별로 없다. 그저 시장 전문가들이 예측을 위해 분석할 뿐이다. 그러니 애플이 지배자가 되지 못한다는 게 애플을 굳이 깎아내리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애플에게 그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그저 개선장군 정도가 되려는 자를 굳이 황제로 밀어올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성격에게 말이다. 로마사에서도 그런 경우는 항상 비극으로 끝났다.


재미있는 것은 모 커뮤니티에서 이 기사를 보고 한 네티즌이 남긴 댓글이다. 애플의 공동 설립자이자 애플2를 만든 워즈니악을 향해 <이 바보는 두가지 플랫폼을 모두 사용해 봤다면 저런 말을 못할 것이다.> 고 했다.

워즈니악은 실제로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을 항시 가지고 다니며 쓴다. 7가지 스마트폰을 다 쓴다는 말도 있다. 그런 워즈니악이 잡스의 제품이 지배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보자. 이것은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서태지의 음반이 판매 순위 1위는 되지 못할 거라 말하자 <음악도 모르는 바보>라고 욕을 먹는 상황이 발생한 것과도 비슷하다. 맹목적인 숭배가 얼마나 슬픈 코미디를 만드는 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좀더 세상을 넓게 보아야 지혜롭게 살 수 있다.